[매일노동뉴스] 폭염 재해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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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재해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
박다혜(법률사무소 고른 대표변호사)
▲ 박다혜(법률사무소 고른 대표변호사)일터에서 폭염에 노출되거나 고열작업을 하다 온열질환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이제 일상적인 뉴스가 되었다. 폭염 재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고, 사업주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기도 한다. 사업주는 고온에 의한 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할 의무와 근로계약상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또한 폭염 사망과 열사병 모두 중대재해로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사업주 책임이 전부는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서 폭염으로 인해 악화된 노동환경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국가는 헌법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자연재해대책법 등에 근거해 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책무를 가진다. 이를 위해 국회는 입법권을 행사하고 정부는 각 위임에 따라 대통령령과 총리령 또는 부령을 발한다. 정부는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보건을 유지·증진하기 위해 산업재해 예방을 지원·지도하는 등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책무를 부담한다. 관련해 법은 고용노동부에게 사업장 출입, 관계 서류 제출 요구, 관계인 출석 명령 등의 각종 감독 권한도 부여했다.
그런데 폭염 재해 예방을 위한 정부의 역할에 큰 구멍이 있다. 국회는 산업안전보건법상 ‘고온’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사업주의 보건조치 의무를 정하면서 정부가 이를 구체화하도록 했는데, 정부는 ‘고열’과 ‘고열작업’을 협소하게 규정하면서 의무의 내용을 임의로 좁혔다. 지난 2022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을 개정하며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의 작업에 대한 의무를 일부 추가한 것은 다행이나, 냉난방·통풍을 위한 온·습도 조절장치 설치 등 여전히 ‘고열작업’에만 해당하는 조치를 남겨둔 데다가 현장의 열사병지수(WBGT)를 측정해 작업을 중지하는 등 실시간으로 필요한 조치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모른척했다. 전통적인 고열작업 현장의 노동자 외에도 뙤약볕에 고스란히 노출된 건설노동자와 농업노동자, 배달노동자, 물류창고, 조리실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 폭염 피해의 범위가 확대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개정이라 볼 수 없다.
물론 안전보건규칙 566조는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적절하게 휴식하도록 하는 등 근로자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사업주의 의무를 정하고 있고, 안전보건조치의무 해석에 관한 최근 판례 경향에 비춰볼 때 위 ‘필요한 조치’에는 적절한 휴식 외에도 노동부 ‘온열질환 예방가이드’ 등의 각종 조치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상당하다. 즉 정부의 하위법령이 허술하더라도, 법원은 사업주의 조치의무를 “해당 산업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로서 해석할 것이라는 의미다(대법원 2021. 9. 30. 선고 2020도3996 판결 등).
그러나 문제는 법원에 당도하기 전의 수많은 현실들이다. 현실에서 사업주는 안전보건조치를 이행하는 것을 비용 증가의 문제로 인식하기에 이윤 증대를 위해 가급적 이를 줄이려 하고 노동자는 위험한 근로조건을 무릅쓰고 일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헌법재판소 2017. 10. 26.자 2017헌바166 결정). 물, 그늘(바람), 휴식 등 기본적인 수칙만 지키면 온열질환은 대부분 예방 가능하다고 하나, 그 기본이 저절로 지켜지지 않음을 기억하고 국가의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 가이드라인 배포와 법이행 ‘촉구’에만 열중하는 고용노동부의 막연한 낙관과는 달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행위는 엄히 처벌하지 않으면 그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위 헌재 결정). 허술한 규칙 개정과 함께, 법이 부여하고 있는 권한에 기초해 적극적인 감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국회도 현재 정부의 하위법령이 입법부의 위임에 합당한지 살피고, 폭염 재해 예방을 위한 실효적인 입법에 나서야 한다. 일터에서의 폭염 재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음에도 관련 법령에 따른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태를 국가가 계속 방조한다면, 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이나 배상책임 등이 사업주에게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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