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8.29]사고조사원과 쿠팡 카플렉스가 빠진 '모든 노동자 4대보험'
본문
사고조사원과 쿠팡 카플렉스가 빠진 ‘모든 노동자 4대보험’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현장에서 일하는 이에게 전화가 오면 다급한 경우가 많아 긴장된다. 아침 출근길, 사무금융노조 삼성화재애니카지부장이 평소보다 격앙된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한다.
“우리가 빠졌는데 ‘모든 노동자 4대보험’이 맞는 건가요? 우리를 빼서 새삼 화나는 건 아니에요. ‘모든 노동자’에 못 들어간 이들을 무시하는 토론회가 국회에서 버젓이 열립니다. 위험하게 일하는 노동자 다수가 배제된 현실을 잘 아는 이들이 이런 제목을 씁니다. 분통 터져 손이 떨리는데,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보내준 포스터를 확인해 보니 ‘모든 노동자 직장 건강보험·국민연금 보장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제목이다. 현행 고용·산재보험과 같은 특례 방식으로 직장 건강보험·국민연금을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이 이를 ‘전 국민 4대보험 첫걸음’으로 내세우는 토론회를 준비한 듯하다. 토론회에 소개된 법안과 관련해 몇몇 국회의원들로부터 자문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 사회보험 혜택이 절실한 이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법의 적용대상을 노동자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직종 열거식’ 진입 장벽을 폐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노무제공자 범위를 정한 고용·산재보험법 시행령에는 목차 기준으로 고용보험 17개, 산재보험 18개의 직종이 열거된다. 이런 식의 장벽을 건강보험·국민연금에도 복제할 경우, 교통사고조사원과 같이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3.3노동자는 여전히 직장 사회보험에서 배제된다.
‘모든 노동자’에서 빠진 이들은 어느 정도 규모일까? 노무제공자 범위 설정에는 한국표준직업분류의 ‘세분류’와 ‘세세분류’가 주된 법적 기준으로 등장한다. 이 직업분류는 최근 8차 개정에서 각각 45개와 39개가 증가해 167개의 세분류와 1천270개의 세세분류로 나뉜다. 전체 직종 중 18개가 어느 정도 비율인지 감이 올 것이다. 실태조사로 드러난 것처럼 3.3노동자가 거의 모든 직종에 걸쳐 종사하는 상황을 인지한다면, 시행령에서 빠진 이들을 나열하거나 셈해 보는 건 별 의미 없을 정도다.
최근 고용노동부의 고용·산재 미가입 조사로 4만건의 ‘가짜 3.3’ 고용이 적발된 쿠팡에서는 누가 ‘빠진’ 것일까? 직종 기준으로 쿠팡식 이름을 찾는다면 ‘카플렉스’다. 이들은 자신의 차로 배송 업무를 수행하고, 쿠팡㈜이 설정한 지급 기준과 당일 배송 물량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지난 7월 경북 경산에서 폭우 중 배송에 나서 급류에 휩쓸린 카플렉스 노동자의 비참한 죽음이 알려졌다. 이들은 왜 산재보험의 가입 대상이 아닐까?
사측과 노동부의 입장을 종합하면, 이들이 산재보험법 시행령 83조의5(노무제공자 범위) 5항에서 규정한 ‘택배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택배사업자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계약한 ‘퀵플렉스’와 달리 ‘카플렉스’는 쿠팡㈜과 계약을 체결하지만, 쿠팡 본사가 택배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똑같이 쿠팡의 배송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계약 상대방이 다르니 산재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논리다. 자회사나 위탁업체가 아닌 본사로부터 사업소득세 3.3%을 떼이는 노동자들이 황당한 논리로 배제된다.
사고조사원이 산재보험 직종에 들지 못한 이유도 터무니없다. 노조가 있는 삼성화재의 경우 다수 교통사고조사원이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노동자성이 유지되지만, 그렇지 않은 자동차보험 회사도 있다. 교통사고조사원이라도 다양한 고용형태가 존재하고, 그래서 대상 직종에 포함하기 어렵단다. 고용형태가 다양해지는 추세에 따라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근로기준을 적용할 수 없으니, 노무제공자 특례 방식을 유연하게 도입한다는 것 아니었던가? 앞뒤 없는 논리도 문제지만, 제도의 취지를 삭제하는 것에는 좌우도 없다. 국민에게 ‘빨간날(공휴일)’을 돌려주겠다고 홍보하고서, ‘5명 미만 사업장’을 국민에서 빼버린 짓거리의 연장이다.
정부와 국회가 ‘가짜 3.3’ 위장고용에 대응하도록 만들었지만, 여전히 ‘모든 노동자’에서 빠진 수백만 명은 사회보험과 근로기준법 없이 일한다. 이글의 당사자들에게 면목이 없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며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한다. 사고조사원과 카플렉스가 빠졌으면 틀린 것이다. 단계론이나 현실론으로 설명할 시간에 평소 들리지 않던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자. 차별을 직시하는 것에서 함께 문제풀이를 시작하자고 정중히 권유한다.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redr404@gmail.com)
- 이전글[매일노동뉴스 8.29] "오늘 하루 제발 무사히" 콜센터 감정노동 정당한 대가는... 24.08.29
- 다음글[매일노동뉴스 8.28] "실내온도 36도" 폭염에 불타는 물류센터 24.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