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8.27] 에어컨, 물도 없는 '폭염 실내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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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도, 물도 없는 ‘폭염 실내노동’ 마루시공 현장 “여기가 지옥”
한증막 더위 견디며 작업 … “상수도 배관만이라도 열어 달라”
“초죽음이 돼도 쉴 수가 없으니까. 우리끼리는 그런 말을 해요. 끼역끼역(꾸역꾸역) 그냥 해야 한다.” 마루시공 노동자 ㄱ(46)씨의 말을 최우영 마루노조 위원장이 이었다. “안 그러면 굶어죽으니까.”
25일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시멘트 가루가 자욱해 시야가 흐리다. 아파트 마루를 까는 노동자들이 바닥을 갈아 내는 게링(평탄화 작업)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 작업을 ‘게링 지옥’이라고 부른다. 여름에 전면 마스크를 쓰고 작업하면 코 밑까지 땀이 차고 현기증이 난다.
물·바람·휴식? ‘무용지물’
마루시공 노동자로 10년 정도 일한 ㄱ씨는 지난 6월 말 지금의 아파트 건설현장에 투입됐다. 마루시공은 막바지 공정 중 하나로, 7~8월을 거쳐 9월 초엔 작업을 마쳐야 한다. 폭염·장마를 겪은 ㄱ씨의 몸엔 땀띠와 피부병을 앓느라 긁은 자국이 남았다. ㄱ씨는 “땀띠가 범벅이 돼 피부과도 다녔는데 딱히 (차도가 없다) … 약을 달고 살았다”고 말했다.
ㄱ씨는 배우자와 ‘부부팀’을 이뤄 오전 6시께 출근해 하루 12~13시간여 일한다. 작업은 바닥을 치우고 그라인더로 평평하게 만든 후 마루를 재단해 시공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마루시공 노동자들의 일터는 건물이 어느 정도 지어진 ‘실내’지만 냉방·수도 시설이 없다.
드레스룸처럼 창문이 없는 방이 문제다. 창문이 있어도 비가 오면 닫아야 한다. ㄱ씨는 “더워서 숨을 제대로 못 쉬겠다”며 “겨울에는 움직이면 열이라도 나는데 여름에는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ㄱ씨의 배우자가 비닐에 담긴 본드를 뜯어 부으며 “아침에 들어오면 사우나 온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여기 현장은 좀 낫다”고 거들었다. 이 건설현장으로 들어오는 길엔 제빙기가 하나 있다. 500~600명이 하나의 제빙기를 쓴다. ㄱ씨와 그의 배우자는 준비해 둔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우고 생수병과 이온음료 등을 넣어 마루시공 현장으로 출근한다. 생수는 편의점에서 산다.
정부는 실내 작업장에서의 온열질환 예방 3대 기본 수칙을 물·바람·휴식으로 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작업 중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제공 △작업 장소에 온·습도계, 선풍기·이동식 에어컨을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환기 △폭염특보가 발령하면 10~15분 이상 규칙적으로 휴식이 지켜져야 한단 내용이다.
오분류, 폭염 사각지대 만들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마루시공 노동자들은 멀게만 느껴진다. 이들은 시행사-시공사-마루회사로 내려오는 하청구조에서 일용직 혹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하나의 현장에 하나의 마루회사가 있는데, 마루시공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만드는 기준은 회사 마음대로다. 노동법상 노동자가 아니게 된 이들의 폭염 작업을 신경 써야 하는 곳은 없다.
아파트 꼭대기층에 위치한 방으로 올라가 마루시공 경력 20년이 넘은 ‘베테랑 노동자’ 서종근(55)씨를 만났다. 서씨가 6년째 사용하고 있는 선풍기를 틀자 잘린 마루 가루가 흩날렸다. 선풍기를 틀고 작업하면 가루가 눈에 들어갈 수 있다. 서씨는 참을 수 없이 더우면 선풍기를 쓴다.
게링 작업을 앞둔 서씨의 작업복 안에 온도계를 넣어 달라고 했다. 마루를 깔기 위해 서씨는 그라인더를 들고 바닥과 문틈을 평평하게 갈아야 한다. 보통 1시간30분에서 2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20분이 지난 뒤 온도계를 빼 보니 기존 28.5도에서 32.4도로 4도 정도가 올라 있었다.
마스크와 작업복을 잠시 벗은 서씨의 얼굴도 땀으로 덮였다. 서씨는 “요새는 작업하면 머리가 띵하다”며 “하도 사람이 죽으니까 작업할 때마다 트라우마”라고 말했다.
서씨는 지난해 3월 동료를 떠나보냈다. ‘머리가 아프다’며 퇴근했던 동료는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최 위원장도 “작업하다 보면 뒷골이 땡기는데 (현장에서) 쓰러져도 (주변엔) 아무도 없다”며 “사람이 죽었는데도 달라진 게 단 하나도 없다”고 했다.
“팔 집 아닌 ‘살 집’ 만들자”
마루시공 노동자들이 휴식하기 어려운 이유는 “움직이지 않으면 돈을 못 버는 구조”와 연관이 깊다. 일용직이 아닌 마루시공 노동자들은 평당 수수료(평떼기)를 받는다. 공사 기간 숙박비와 식비를 빼고 장갑·마스크 등 각종 일회용 장비를 구입하면 하루를 꼬박 일해도 빠듯하다. 건설현장 입구에 있는 화장실에 걸어갈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다. 실내 건축노동자의 상황은 비슷하다. 다른 노동자의 대·소변 곁에서 일하는 건 일상이 됐다.
평떼기는 마루시공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날 서씨는 바닥에 놓인 에어컨 실외기를 들어 날라야 했다. 에어컨 실외기와 드레스룸에 설치할 장비, 문짝 등은 마루시공과 도배가 완료되면 들어와야 하지만 현장에선 공기에 쫓겨 먼저 넣어 놓는 경우가 다반사다. 들어 온 집기들을 옮기는 건 마루시공 노동자들의 몫이 됐다. 빨리 마루를 시공해야 돈을 버니 문제제기도 어렵다. 서씨는 “공정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며 “날은 덥지, 현장은 완전히 주먹구구”라고 답답해했다.
“땀이 한 바가진데, 상수도 배관만 열어 줘도. 손이라도 씻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노동부 시행규칙 바꿔서 여름에 건설현장에서 물 안 나오면 과태료 2천만원, 이러면 끝일 거 아니에요. 건설사는 비용이라고 안 열어줘요. 그거 아끼자고 사람 죽어 나가는 걸 방치하는 거예요.”
마루시공 노동자들의 말을 듣고 자신이 일하는 방으로 돌아간 최우영 위원장은 “안타깝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여기서 한 명이라도 죽어야 관심을 가질 건데 예방이 돼야 하는 거 아니냐”며 연신 마루 위를 망치로 두드렸다. 방엔 본드 냄새가 가득했다. 이제 작업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최 위원장은 “물 좀 나오고 냉방기라도 있으면 우리가 더 꼼꼼하게 하게 되고 소비자들에게도 도움 될 것”이라며 “팔 집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집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집을 만드는 노동자가 ‘살 수 있는’ 작업환경이 되면 소비자가 ‘살아갈 집’의 환경도 좋아질 거란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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