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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 취업규칙이 근로계약서를 대체할 순 없다

작성자 관리자 조회 573회 작성일 24-07-1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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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규칙이 근로계약서를 대체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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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주 금요일(12일), 또다시 임금피크제 사건 재판이 예정돼 있었다. 금융그룹의 신용정보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 무효를 주장해서 임금 및 퇴직금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지난해 6월 소장을 제출해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수차례 변론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이번 변론기일을 앞두고는 원고들이 특별히 주장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있었다. 한 캐피탈회사의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같은 법원에서 판결이 나왔다며 사안과 쟁점이 동일하니 꼭 주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보내준 판결문을 읽어 보니 원고 노동자들이 임금피크제에 따른 임금삭감은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차별에 해당한다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 외에,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에 관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우리 사건과 주장 및 쟁점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판결문에서 법원은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위반해서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결하고 있었다. 이렇게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에 관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임금피크제가 위법· 무효인 것이니 고령자고용법 위반 여부에 관해서는 추가로 판단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지만, 판결문에서는 가정적으로 이에 대한 판단까지도 덧붙여 놓고 있었다. 아무튼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위반해서 임금피크제가 위법·무효라고 같은 법원에서 판결한 것이라서 비록 이미 했던 주장이기 했지만, 원고들의 요구에 따라 소송대리인으로서는 이번 재판을 앞두고 좀 더 자세히 준비서면으로 작성해서 거듭 주장을 하게 됐다.

2. 최근 임금피크제 사건은 만만치 않다. 노동자가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주장해서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 등 하급심 법원은 물론, 대법원도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결하는 걸 보기 어렵다. 최근 임금피크제 소송은 고령노동자에 대한 연령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에 근거해서 그 위반이라고 노동자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여간해서 우리 법원은 이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2016년부터 시행된 고령자고용법상 정년 60세를 사업장 근로자의 정년으로 정해서 실질적으로 정년이 연장되지 않는 것인데도 이에 따른 임금피크제를 합리적 이유 있는 연령차별에 해당한다고 보고 고령자고용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법원은 판결해 오고 있다. 법적 정년을 정년으로 정한 것에 불과해서 정년연장하는 임금피크제가 아니라고 노동자들이 수도 없이 주장해도 우리 법원에서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정년을 연장하는 임금피크제로 판단하게 되면, 정년연장과 임금삭감 정도는 비교해서 정년연장하지 않고 지급받을 수 있었던 임금총액과, 임금피크제로 정년연장된 상태에서 지급받게 되는 임금총액을 비교해서 임금피크제로 지급받게 될 총액이 적지 않다면 임금피크제로 인한 불이익 정도가 크지 않다며 이를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근거로 취급해서 우리 법원은 판결하기 일쑤다. 노동자가 몇 년을 더 일하게 되는 것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이런 법원 판결문들을 읽자면 여간 속이 터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궁리한 것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위반이라는 주장이었다. 고령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 위반 주장을 우리 법원에서 들어주지 않으니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에 관한 근로기준법 위반을 주장하게 된 것인데, 국민은행 등 몇몇 사건에서 법원은 그 주장에 따라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지난주 금요일 재판이 예정됐던 신용정보회사 사건 원고들이 보내준 법원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3. 그렇다고 임금피크제 사건들에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위반을 주장해 볼 만 하다는 건 아니다. 이 나라 대부분 사업장들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시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거치거나 과반수노조가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거친다. 여기서 과반수노조의 동의는 그 노동조합(위원장)이 사측의 임금피크제 도입에 동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실제 사건에서는 해당 사업장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인지 여부만 다툼이 될 뿐이다. 문제는 과반수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사업장인데,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동의는 근로자 집단의 집단적 의사결정, 즉 회의방식에 의한 동의여야 한다. 당연히 사용자측의 부당한 개입이나 간섭이 배제된 상태여야 한다(대법원 2004. 5. 14. 선고 2002다23185, 23192 판결 등). 그런데 여기서 회의방식이란 법원은 해당 사업장 근로자 전체가 한자리에 모이지 않고 기구별·부서별로도 가능하고 사용자측이 변경될 취업규칙 내용을 근로자들에게 설명하고 홍보하는 것은 부당한 개입이나 간섭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니 임금피크제 도입에 관해서 사용자가 설명회를 열어 사업장 근로자 과반수 이상이 참석해서 논의해서 근로자 과반수가 동의한 것이라면,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친 것으로 우리 법원에서 판단되는 것이다. 만약 본사 외에 각지에 지사를 두고 있는 사업장에서 본사에서만 설명회를 열고, 그 설명회에 근로자 과반수에 밑도는 본사 근로자 일부만 참석해서 사측의 설명만 듣고 별도로 근로자들이 의견 교환 없이 사측이 주도한 투표에 찬반을 표시한 것이라면 해당 사업장 근로자의 과반수가 찬성한 것이라도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쳤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바로 지난주 금요일 재판이 예정됐던 신용정보회사 임금피크제 사건의 준비서면을 통해서 나는 이런 주장을 했던 것이다. 근로자 과반수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찬성했어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서 요구되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나는 주장했던 것이다. 예정됐던 재판은 추정돼 열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법원에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준비서면을 진술할 수도 없었다.

4. 임금 등 근로조건은 근로계약의 주요 내용이다.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해서 취업규칙을 통해서 그 기준이 정해진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자와 사용자 간 법률관계인 근로계약의 내용인 걸 부정하지 못한다. 근대 이후 이 세상은 법에 의해서 규정되는 국가와 국민의 권력관계를 제외하고는 법률행위 당사자의 의사로 정해지는 것이고 근로계약에 있어서 당연히 그렇다. 비록 근로기준법에서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작성·변경해 사업장 근로자에게 적용하도록 취업규칙제도를 규정하고 있지만, 근로계약에 의해서 임금 등 근로조건이 정해진다는 계약 법리가 취업규칙 법리에 의해서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비록 근로계약에서 정하고 있지 않거나, 취업규칙에서 더 우월하게 정하고 있어 취업규칙 기준이 근로자에게 적용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근로계약의 내용으로서 그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근로계약을 취업규칙이 대체해서 적용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 취업규칙은 근로계약 관계의 한 당사자인 사용자가 작성·변경하는 것인데, 일방 당사자의 의사를 다른 당사자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근대 계약 질서에 명백히 반해서 허용될 수 없다. 그것이 해당 사업장의 과반수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는 것이라고 해도 사용자가 작성·변경하는 기준으로서 취업규칙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과반수노조나 근로자 과반수가 동의했다고 해서 해당 사업장에서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가 그 취업규칙을 자신의 근로계약 기준(내용)으로 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취급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취업규칙은 취업규칙일 뿐, 그것이 근로계약을 대체하지 못한다.

5. 이처럼 취업규칙이 근로계약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인데도, 이 나라에서는 근로계약을 대체해 왔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수십만 건의 법원판결은 근로계약을 대체하는 것을 판결해 왔고, 오늘도 날마다 판결하고 있다. 근로계약에서 취업규칙을 통해서 정하기로 했다고 해서 근로계약을 쓰레기통에 처넣고, 취업규칙만 쳐다봤다. 오늘 이 나라에서 근로계약 관계를 보라. 도대체가 근로계약은 없다. 취업규칙만 널려 있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취업규칙만 바라본다. 취업규칙이 아니라 근로계약을 통해서 자신이 사용자와 합의해서 임금 등 자신의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취업규칙을 생각하면, 이 나라는 암담하다.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자신의 의사 없이 타인이 정한 바에 따라 일하는 자를 노예라고 불렀다. 노동자가 노예가 아닌 것은, 사용자와 합의해서 자신의 임금 등 근로조건 등을 정할 수 있는 계약관계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사용자에 의해서 임금 등 근로조건이 정해진다면, 그 조건을 적용받게 되는 노동자는 노예고, 그 사용자는 주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 등 취업규칙을 보고 있자면 노예와 주인만 보일 뿐, 계약 자유의 노동자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과반수노조든 근로자 과반수든 그 동의로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노동자(근로자)의 개별적인 동의를 대신하지 못한다. 노동자의 동의 없이 노동자에게 취업규칙을 적용할 수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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