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7.18] 20년을 역행해 근로자성을 부인한 노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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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역행해 근로자성을 부인한 노동위원회
독자들에게 퀴즈를 내보겠다. 다음 중 레미콘 운송기사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성에 대한 2024년 노동위원회 결정문에 해당하는 것은 어느 것일까?
① “비록 도급 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신청인들은 개인사업자로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본인의 계산, 창의와 노력으로 독자경영을 도모할 수 있는 영업의 자유가 있어야 하는바, 이를 찾아보기 어렵고 (중략) 경쟁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영업의 자유도 전혀 없는 점을 감안할 때 피신청인 회사의 사업장에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로 볼 수 있다.”
② “레미콘 차주들은 이 사건 사용자(레미콘회사)의 지휘·감독하에 사용·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에 종사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닌 것으로 판단”
노조법이나 노조활동에 대해 식견이 있는 독자라면 아마 ①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①은 2001년 2월13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문이고, ②가 지난 5월13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결정문이다.
원래 ‘근로자’였던 레미콘 운송노동자들은 80년대 말부터 진행된 건설업 구조조정 속에서 ‘개인사업자’로 전환됐다. 그럼에도 레미콘회사들은 ‘위수탁계약서’를 통해 배차지시, 지시 불응시 제재, 보수(임대료) 등을 일방적으로 지배했다. 레미콘 운송노동자들은 이런 ‘현대판 노비문서 철폐’를 내걸고 2000년 9월 건설운송노조를 결성했다. 건설운송노조는 2001년 3월22일 노조설립신고증을 교부받고, 서울·경기·인천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인천지방법원 등에서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고 단체교섭 등을 진행했다.
노조 설립 3개월 만에 조합원이 2천300명을 넘어서고, 레미콘에 이어 덤프트럭, 굴삭기 등 건설업 특수고용 노동자의 조직화가 이어지면서, 건설업체들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소송 제기라는 맞불을 놨다. 그 와중에 레미콘 노동자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결들이 나오고, 2009년부터 노동부는 건설노조에서 특수고용 조합원을 내쫓으라는 규약 시정명령을 내린다.
특수고용노조에 대한 이러한 법제도적 탄압은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에 진정됐고, ILO는 2011년부터 수차례 정부에게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침해를 중단하고 단체교섭을 촉진할 것을 권고했다. 이처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조직・투쟁이 끈질기게 이어지자 결국 대법원도 2018년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종전보다 넓게 인정하는 판례 법리를 내놓게 된다.
그런데 최근 노동위원회가 레미콘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며 인용한 판결은, 2018년의 새 판례보다 십여 년도 더 오래된 판결들, 즉 노조법상 근로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구체적 지휘·감독관계’ 중심으로 판단한 낡은 법리들이다. 다른 사안에서는 법원과 다른 판단을 내리기를 극도로 꺼리는 노동위원회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신청 노동조합의 구성원들인 레미콘 운송업자들이 레미콘 사업자들과 자신들의 운송서비스 조건을 형성하는데 노조법상 노동권 실현 수단인 단체협약이라는 방법을 취하지 않더라도 종래와 같이 양 단체 간 운반단가 합의 등을 통해서도 할 수 있으므로” 노동 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없다는 결정문에서 그 속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파업권을 비롯한 노동 3권을 온전히 향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 3권 침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정부는 2018년 판례법리에 따라 특수고용노조가 설립신고증을 받고 있으므로 국제노동기준 위반이 없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최근 노동위원회의 시대를 거역한 결정들은 이런 정부의 주장이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오랜 고통과 비용을 부담시키는 사법적 판단에 맡겨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왜 노조법 2조 개정이 필요한가를 또 한 번 일깨운다.
노동권 연구활동가(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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