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12.19] 재직 여부나 최소 근무일수를 조건으로 지급하는 '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 - 통상임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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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 대법원, 11년 만에 판례 변경
통상임금 판단기준에서 ‘고정성’ 폐기 … 판결 선고일 이후, 현재 계류 사건만 적용
재직 여부나 최소 근무일수를 조건으로 지급하는 ‘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기존 통상임금의 요건인 정기성·고정성·일률성에서 ‘고정성’을 제외함으로써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근무 일수 조건의 효력을 무효라고 판단했다. 2013년 제시한 통상임금 판단기준을 11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9일 오후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 전·현직 노동자들이 각각 사측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을 선고하면서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제외하고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기준을 재정립했다.
“고정성 요건 법령상 근거 없어
통상임금 범위 부당하게 축소”
재판부는 그간 통상임금 판단의 핵심 기준이었던 고정성 요건이 법적 근거가 없어 기존 판례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1항에는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으로만 정했을 뿐 고정성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통상임금 고정성 요건은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립했다. 당시 대법원은 통상임금 판단 기준으로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된 것’이라고 판시했다. 고정성에 대해서는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를 제공하면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예정돼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된 임금은 고정성을 갖춘 것’이라고 정리했다.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는 임금, 또는 일정 근무일수를 총족해야만 지급하는 임금은 고정성을 갖춘 것으로 보지 않았다. 각각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차 통상임금 관련 단체협약·취업규칙에 명시된 조건이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법령상 근거 없이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의 사전 확정’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개념적 징표로 요구하는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시킨다”며 “지급조건을 부가해 쉽게 그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통상임금의 강행성이 잠탈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개념이므로 실근로와 무관하게 소정근로 그 자체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소정근로 대가성을 중심으로 통상임금 개념을 재정립했다. 소정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으로, 노동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그에 부가된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조건부 상여금 포함, 근무실적 따른 성과급은 제외
따라서 재직조건이나 근무일수 조건이 붙은 임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재직하는 것은 소정근로를 제공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라며 재직조건이 있다고 해서 소정근로 대가성이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근무일수에 대해서도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면 충족할 소정근로일수 이내 근무일수 조건이 부가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소정근로일수를 초과하는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은 추가근로의 대가여서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성과급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근무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은 일정한 업무성과나 평가결과를 충족해야만 지급되므로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제외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소정근로 대가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워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근무실적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최소지급분은 소정근로의 대가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로 한화생명보험 사건은 노동자들의 일부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재직조건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본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본 것이다. 반면 현대차 사건은 사측이 승소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기준 기간 내 15일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본 원심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파급 효과 고려해 새 법리 적용 시점 제한
이번 판결의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파급효과를 고려해 새로운 법리의 적용 시점을 제한했다. 이번 판결 선고일 이후부터 법리를 적용하되,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동종사건에만 소급 적용된다. 대법원은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를 위해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해야 한다”며 “다만 이 사건 및 병행사건에는 구체적 사건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법의 본질상 새로운 법리가 소급해 적용된다”고 밝혔다.
앞서 경총은 통상임금 법리 변경시 전체 기업의 26.7%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재직자 조건이 부가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하도록 법리를 변경할 경우 연간 약 6조7천889억원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차 노동자들을 대리한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법령에 고정성이라는 문구 자체가 없어서 (통상임금 요건에서 고정성이) 폐기돼야 한다는 주장을 노동계 중심으로 해 왔는데 이제야 법원이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소급적용에 대해서는 “이날 선고 이후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임금채권 소멸시효가 3년이니까 지금부터 3년 전 임금에 대해서는 청구를 하기 어렵다”며 “결국 자본의 논리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 아쉽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환영’ 재계 ‘유감’
노동계와 재계 반응은 엇갈렸다.
한국노총은 논평을 통해 “늦었지만 법문에 규정돼 있지도 않은 ‘고정성’ 요건을 폐기해 해석상의 논란을 종식시킨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면서도 “종전 통상임금 판결시 신의칙 위반이라는 이유로 추가임금 청구를 제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소급적용을 하지 못하도록 한 부분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은 “실질적으로는 고정적 상여금임에도 불구하고 재직 중 등의 이유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아 많은 혼란이 있었다”며 “통상임금에 대한 복잡성과 혼란을 가져온 현실을 바로잡는 바람직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경총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신뢰해 재직자 조건 등이 부가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하지 않기로 한 노사 간 합의를 무효로 만들어 현장의 법적 안정성을 훼손시키고, 향후 소송 제기 등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정기상여금을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에는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